드디어 믿는자가 되다
안 종 인 집사 (1교구)
♬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찌라 ♩
샬롬! 신앙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저의 간증은 어느 선교사님처럼 삶의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세계 곳곳을 다니며 연주하는 간증도 아닙니다. 오랜 세월의 병마를 신앙심으로 이겨내어 자신의 삶을 승리로 이끈 것도 아닙니다. 단지 예수님을 모르던 제가 주님을 영접하고 난 후, 제 삶에 조그마한 변화가 있었고, 그런 믿음의 싹이 점점 더 자라고 있다는 소박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40가구 정도 되는 조그마한 시골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유교, 불교, 샤머니즘이 그 마을의 생활양식을 주도하고 있었습니다. 마을사람들은 “저 제사도 안 지내는, 조상도 모르고 저거 할아버지, 할머니도 안 모실려는 예수쟁이들” 이라며 기독교인을 배척 하였습니다. 절친 중에 목사님 아들이 2명이나 있었는데도, 특별한 날에 교회에 몇 번 참석한 게 전부였습니다. 성실한 신앙생활로는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이후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하게 된 어느 화창한 날에 선배님 손에 이끌려 성경공부 동아리를 잠깐 다녔으나, 학우들과 자주 술자리를 즐기는 저와는 맞지 않아 그만 다니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방학 때 시골집에 내려와 있었는데, 동아리 분들이 직접 제가 있는 곳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여름성경학교를 가자며 몇 시간 동안 설득하셨습니다. 그때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참 독한 분들이시구나. 왜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까지 찾아와 수련회에 데려 가려고 애쓰는가?’ 그 당시 저는 종교에는 관심이 많았으나, 자유분방한 삶을 즐기는 대학생이었기에 신앙생활을 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세월은 흘러 서른 후반의 나이에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하였습니다. 첫째 아이 세살 때 송파구로 이사를 오면서 예수님과의 만남의 길은 열립니다. 아내는 아이들에게는 따뜻하고 엄한 어머니이며 판단이 빠르고 현명한 사람이라, 항상 내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아내가 2011년 여름쯤 임마누엘교회를 먼저 다녔고 별 생각 없이 지켜보던 저에게 “이 근방에서 수정유치원이 제일 괜찮다는데, 부모 둘 다 교인이 되어야 애가 유치원에 다닐 수 있어. 아빠가 그 정도는 해야 되지 않겠어요?” 라는 아내의 말에 2012년 7월 쯤 임마누엘교회에 첫 출석을 하게 됩니다. 그 후 주일예배에 참석하면서도 ‘하나님이 과연 계시는지?’, ‘나에게는 왜 안 나타나시는 건지?’, ‘내 기도는 언제쯤 들어 주실 건지?’ 이런 여러 생각들을 마음속에 품고 다녔습니다. 신실한 신앙생활을 잘 실천하지는 못하였지만 어딜 가든 보고 들은 바대로 기도는 열심히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은 생생한 꿈을 통해 임재하심을 보여 주셨습니다. 아멘! 어머니를 모시고 차를 몰고 가던 중 미끄러져 터널 벽에 심하게 부딪혔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밝은 곳으로 나와서 보니 차는 거의 못쓸 정도로 찌그러져 있었는데 어머니와 저는 몸을 하나도 안 다친 겁니다. 그때 검은 옷을 입은 여자 분이 오셔서 기도로 인해 두 분이 다치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니는 “내가 장독대에 물 받아놓고 빌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분은 “그런 기도가 아니라 아드님 기도의 덕”이라고 말씀하시고는 눈앞에서 영화같이 사라지셨습니다. 한번은 제가 세상의 즐거움과 편안함에 빠져 있을 때 피흘리며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저는 가슴이 너무나 뜨거워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멘!
교회를 다니면 나의 기도를 들어주시어 모든 일들이 형통할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직장과 가정에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직업 특성상 1~3월은 너무나 바빠서 도저히 시간을 낼 수가 없었지만 틈나는 대로 교회 활동에 참여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여러 상황이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직장상사와 육아로 인한 아내와의 마찰도 있었습니다. 교구 찬양축제 연습 때는 치통이 심해 고생을 했고, 세례 받을 때에는 밤새워 일하고 와서 비몽사몽으로 교회에 갔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때에는 ‘상황이 이런데 내가 꼭 교회에 가야 하는가?’ 란 생각도 들었으나, 어느 순간 ‘세상에 속해 있던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을 향하여 가고 있을 때 사탄이 여지없이 나를 시험하는구나. 세상일로 나의 신앙생활에 훼방을 놓는구나’ 라는 깨달음이 생겼습니다. 기독교인이 세상에서 천국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더 많은 희생을 감내하며 믿지 않는 자들보다 더 부지런해야 함을 알게 해주셨습니다. 선교회 활동 속에서 회개의 눈물로 기도드리는 유치장 선교때엔 예수님 말씀을 처음 들어 봤다는 창살속의 형제들을 보면서 제가 오히려 은혜 받는 시간이 되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독립을 하는 초반에는 영업력이 부족하여 사업을 이끌기가 벅찼습니다. 경제적인 부분도 근심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필요할 때마다 해야할 일과 부족분을 넉넉히 채워주셨습니다.
‘내가 열심히 하면, 나의 주님께서 아시고 이끌어 주신다.’ 라는 믿음이 늘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저의 마음을 살펴보시고 충만한 복을 내려주셨다고 확신하고, 믿습니다. 지나고 보면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순간순간에도 늘 주님은 나의 기도와 간구를 기다리셨습니다. 내가 세상이 주는 편안과 즐거움에 빠질 때에도 자녀된 자리로 되돌아 오기를 바라셨고, 그 좁은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제 믿음의 싹은 해를 거듭할수록 더 커져 가리라 믿습니다. 아버지께서 주신 성경 말씀에 더욱더 집중할 수 있는 능력과 지혜를 얻게 되길 간구합니다. 시간과 체력도 허락하시어 예수님을 모르는 형제자매가 주님의 자녀가 될 수 있도록 전도하는데 힘쓰게 해주십시오. 우리 가정이 말씀아래 양육되는 믿음의 가정이 되게 하시고,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 저희 가정위에 역사하게 하옵소서. 특별할 것 없는 제 이야기가 간증이 된다고 하니 부끄럽습니다. 우리의 삶이 오직 주님의 능력에 힘입는, 주님만을 바라보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