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내게 주신 비전
우 지 연 집사 (11교구)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나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 나를 보내신 이도 하나님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아멘!
제가 이 자리에서 하나님을 증거하게 하시고 저를 도구로 삼아 주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저는 모태신앙으로 강남제일교회를 다섯 살 때 등록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임마누엘 제단은 제 믿음의 뿌리가 내려진 곳입니다. 이곳에서 기도와 말씀과 찬양을 배웠고 지금까지 함께 기도해 주는 평생 믿음의 친구들을 만났으며 확실한 비젼을 발견한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자리가 편하기도 하지만 매우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저는 어린 시절 매우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아이였습니다. 그러던 제가 지금은 유아에서 청장년 노인에 이르다 못해 치매 어르신들까지 가르치고 또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하는 무용수가 되었습니다. 세상의 관점에선 보잘 것 없고 부족한 저를 변화시키시고 도구삼아 주신 하나님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초등학교시절 무용을 배우고는 싶은데 넉넉하지 않은 가정 형편으로 무용은 저에게 사치스러운 꿈에 불가했습니다. 그러다 초등부 졸업예배를 마치고 중등부 입학예배를 드리러 베들레헴성전으로 들어가는데 그렇게 소극적이던 제 마음에 미가엘찬양대를 “오늘부터 꼭 해야겠다!!”는 결심이 생겼습니다. 저도 그런 제가 낯설었지만 저는 용기를 내었고 찬양대를 하면서 저는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제 모습을 깨달아 가던 어느 날, 잠들기 전 기도를 드리는데 입에선 뜻밖에 기도가 ‘툭’터져 나왔습니다. “하나님 세계를 다니며 몸으로 찬양하는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순간 저도 놀라서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기도는 매일매일 제 입술에 고백이 되었습니다. 뜬 구름 잡는 정말 꿈같은 기도, 지금 생각하면 그 고백은 하나님께서 시키신 고백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몇 년을 기도했지만 저에게 무용에 무자도 배울 수 있는 기회는 없었습니다.
그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고 싶은 무용과를 못가면 대학은 나에게 의미가 없다며 모험과 신비의 나라 롯데월드에서 공연부 연기자로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돈도 벌고 좋아하는 춤도 배우고? 괜찮다~ 그리고는 매일 꿈과 환상 속에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주일을 지킬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공연부에서 주일을 쉬려면, 연차로나 실력으로나 인정을 받아야, 쉽게 말해서 짬밥이 되어야 가능했습니다. 주일을 어기면 큰일 나는 줄 알았던 저는 열심히 기도했더니 등급오디션에서 하나님은 저를 최고 점수를 받게 하시고 당당하게 주일을 지킬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뜬금없이 그곳에서 함께 공연하던 친구가 무용과로 대학을 가지 않겠냐고 권면했습니다. 그때 그 친구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도구였습니다. 대입 실기시험 4개월 전!! 정말 독하게 마음먹고 매일 새벽 롯데 연습실로 향해서 발톱이 빠지고 발바닥에 물집이 생겨도 몸이 부서져라 4개월을 정신없이 달렸습니다. 기적처럼 합격을 했고 입학을 하고 보니 최단 시간 최저 비용을 들여 입시를 치른 사람은 저 뿐이었습니다. 저는 그토록 하고 싶던 무용을 전공하게 되어 정말 학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남들보다 2년 늦게 학교를 가다보니 공부의 절실함도 알게 되어 열심히 공부도 하게 되고, 돈을 번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걸 알고 대학에 진학을 했기 때문에 어떻게든 장학금을 받으며 다녀야 했습니다. 그렇게 빠져든 무용의 세계는 제 마음에서 하나님보다 선배나 교수님들이 우선순위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꿈에 그리던 무대, 화려한 조명과 음악, 심오한 내용을 가식적으로 표현하면서 나름 좋았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공연이 끝나고 내려오는 무대에서 행복하지가 않았습니다. 뭔가 허탈하고 채워지지 않는 기분, 너무 하고 싶었는데.. 그래서 하고 있는데… 이런 마음이 들 때, 그때 하나님께선 저에게 이렇게 말씀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넌 나를 찬양한다고 하지 않았니? 될 수 없는 상황가운데 너를 여기까지 인도한 나를 잊었구나!’ 순간! 나의 어린 시절 고백이 생각났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내 등 뒤로 저~ 멀리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교회는 열심히 다녔지만 제 안에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제 마음속에선 세계를 다니며 몸으로 찬양한다던 고백들이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이제 보내주세요~ 넓고도 넓은 세상 밖으로”~ 그런데 어떻게 가지? 나를 불러주는 이들이 없는데? 길은 보이지 않았고 고민하며 기도하던 중 그 당시 에벤에셀찬양대 이용훈지휘자님과 연결이 되었고 그분이 섬기던 베다니 선교회란 곳에 함께 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확실한 응답처럼 꿈으로 보여주셨고 그때부터 저는 베다니 선교단에서 워쉽 팀장으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베다니 선교단은 올해로 30년 된 자비량 선교팀으로 1년에 한 번씩 세계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찬양, 공연 선교팀 입니다. 지금까지 10여년이 넘는 시간동안 하나님은 저를 세계로 보내시며 워십 사역을 감당케 하시며 저의 비전을 이루어 가셨습니다. 그중 가장 잊을 수 없는 두 가지 사역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처음으로 떠나게 된 카자스탄 선교여행은 출발 전부터 물질로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게 하시고, 사역지에선 말이 통할 리 없는 카자스탄 청년들과 얼싸안고 춤추고 찬양하고 기도하고, 세상의 그 어떤 무대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가슴 벅차고 황홀하기까지 했던 시간들 이였습니다. 카자스탄에서 제가 만난 하나님은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노라~’고 확신 있게 말씀하여 주셨고 그걸 마음껏 느껴보라고 마련해 주신 저를 위한 은혜의 잔치였던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사역을 하던 중 교회 청년부에서 한 형제를 알게 되었고 서로 비전을 나누는 가운데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긍휼한 마음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물질로 축복을 받으면 외국인 노동자와 선교사님들을 후원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그 비전을 듣고 선교에 같은 비전이 있음에 반가왔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제게 보낸 사람인지 아닌지 기도하기 시작했고 하나님께서 배우자로 ok 하셔서 지금의 제 남편이 되었습니다. 머지않아 남편의 비전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습니다. 아멘!!
그리고 중국과 아프리카 사역 때는 강권적으로 나를 보내시고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중국 선교 때는 이미 결혼을 하여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었는데 아이를 키우면서 선교를 간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선교와 믿음생활은 2년간 잠시 저 홀로 휴식~ 육아로 지칠 대로 지쳐서 제 마음엔 가뭄이 찾아왔을 때였습니다.
중국 선교를 가자고 선교단에서 연락이 왔고 3, 4번 거절을 했을 때 그날 제가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꿈에 어두운 사막이 보이고 그 사막위에 엄청나게 큰 구덩이가 파져있습니다. 그 구덩이 주위로 손에는 쇠사슬을 차고 다 찢겨진 옷차림을 하고 힘없이 구덩이를 따라 돌고 있는 아프리카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그러다 순간 한 사람이 그 구덩이 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또 한사람.. 또 한사람 저는 너무 무서워서 온 몸이 마비된 것처럼 굳은 채 눈을 번쩍 떴습니다.
그때 누군가 제 머리를 강하게 내리쳤고 귓가에서는 쩌렁쩌렁한 찬양이 한 소절 들렸습니다. “저 죽어가는 내 형제에게 생명을 주소서” 송정미씨의 ‘메마른 뼈들에게 생기를’ 이란 찬양이었습니다. 저는 순간 무릎 꿇고 ‘중국 가겠노라’ 기도했습니다. 그리고는 고민 끝에 5살 된 아들과 함께 다녀왔습니다.
중국을 다녀와 얼마 지나지 않아 케냐 선교를 가게 되었고 이때도 아들과 함께 가게 되었습니다. 은혜와 감사의 사역들이 끝나가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3일전 그곳 선교사님이 일정에 없던 사역을 부탁하셨습니다. 바로 세계 3대 슬램가로 꼽히는 기베라 슬램, 늘 사건 사고로 접근 자체가 위험하지만 꼭 복음이 필요한 곳이라고 부탁하셨으나 어린 아이들까지 동행해야 하는 우리는 결정이 쉽지 않았습니다. 기도하려 눈을 감는 순간 하나님은 몇 개월 전 꿈으로 보여주셨던 구덩이로 떨어지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모습을 제 눈앞에 다시금 보여주셨습니다. 그곳 사역은 이미 오래전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곳이었기에 모두가 성령으로 확신을 얻은 케냐 사역 중 가장 은혜롭고 풍성하게 마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제 기도에 응답해 주셨고 저를 사용하여 주신 것도 모자라 지금은 저의 든든한 동역자인 두 아이들과 상황이 맞으면 남편까지 모두가 함께 사역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해마다 선교를 다니고 아이 둘을 전인학교에 보낸다고 얘기하면 ‘돈이 많은가 봐~’라고 얘기하는 분들도 솔직히 계십니다. 그런데 저희는 은행 빚으로 살아가며 대출금 갚기조차 버거운 그저 평범한 30대 40대 가정입니다. 저희가 약간의 무리수를 두면서 선교를 다니고 전인학교에 보내는 건 확실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좋은 학벌, 넉넉한 물질, 누구나 원하는 것입니다. 저도 정말 사모합니다. 그러나 저희 부부는 요즘같이 질서가 무너지는 세상에서 우리 아이들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부모의 강요도 아니요, 스스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예배하는 자로 키우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저희보다 몇 백배 큰 축복을 받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토대로 세상의 지식을 배우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훈련들을 받고 있습니다. 정말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희 가정은 기도합니다. 남편을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여 주시고, 두 아이들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싶은 마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보다 더 크지 않기를 조금은 부족한 모습일지라도 하나님 보시기에 사랑스럽고 동행하고 싶고 사용하고 싶은 사람들로 자라주길 기도합니다. 저 또한 지금의 자리에서 한발 더 전진하려고 준비합니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찬양하는 춤추는 예배자가 되고 싶습니다.
한없이 보잘 것 없고 부족한 저와 저희 가정을 부르시고 보내시는 하나님 내 아버지를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