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예수]가정의 변화를 이루시는 하나님

가정의 변화를 이루신 하나님

김 오 순 성도 (10교구)

흔히들 좋은 기회만 있다면 성공의 발판을 다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 뒤에는 엄청난 고통과 피나는 노력이 뒤따른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부터 저희 부부가 겪었던 고통과 그 위기를 극복하여 성공의 발판을 다진 제 삶을 고백하려 합니다.

저는 26살 나이에 남편과 결혼하여 1남 1녀를 슬하에 두고 있습니다. 남편은 결혼 당시 삼성 반도체 수석 연구원으로, 메모리 사업부에서 없어선 안 될 훌륭한 사원으로 능력을 인정받고 대리에서 과장 그리고 차장까지 승승장구하였습니다. 남편은 삼성이라는 회사를 다니면서 높은 직급을 달고 많은 연봉을 받았지만, 그에 상응하는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하여 건강이 악화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남편은 건강상의 이유로 17년간의 회사생활을 접고 2008년도에 회사를 그만두게 됩니다. 그 당시 딸은 5학년, 아들은 1학년으로 남편이 회사를 그만두게 되어 눈앞이 캄캄했지만 제가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남편의 실업이 크게 와 닿지 않았습니다. 성실하고 근면했던 남편이었기에 대기업을 퇴사한 이후 재충전을 하다보면 중소기업이라도 취직할거라 믿었던 저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3년 넘게 휴직 상태에 있는 남편을 보면서, 가장의 역할을 하지 않는 남편이 밉고 원망스러웠으며 스스로에게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남편과의 대화를 통해 돌파구를 찾고 싶었지만 남편은 자존감 때문인지 저와의 대화를 기피했고 무엇인가 해보려는 의지는 보이지 않은 채,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있었기에 집안 분위기는 점차 어두워져만 갔습니다.

전, 여자 혼자서는 감당하기 벅찼던 생활비와 교육비, 그리고 빚에 대한 부담감을 지닌 채로 하루하루 버텨야만 했습니다. 저는 잠든 아이들을 보면서 눈물을 훔쳐야만 했고, 내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우리 가정이 깨질 위기에 처할 것이라는 것도 감지하였습니다. 따라서 저는 남편에게 충격을 줌으로써 가장의 위치로 바로 세워야겠다는 큰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내린 첫 번째 결단은 이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낡은 아파트로 이사함으로써 위기의식을 불러 일으키고 남편의 느슨해져 있던 정신적 상태를 긴장시켜야겠다는 의도였습니다. 하지만 의도와는 달리 낯선 공간 속에서 적응을 못하고 우울해 하던 사람은 다름 아닌 저였습니다. 새로운 환경에서 아는 사람 한 명 없이 무기력한 생활을 반복하던 도중에 앞 집에 사시던 10교구의 김석진 집사님을 알게 되었고 집사님은 힘들다고 투정부리는 저에게 남편을 바로 세워야만 가정이 행복해진다고 다독이시며 저를 교회로 인도하셨지만 남편과의 관계는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그에 따른 제 두 번째 결단은 부부 상담소를 찾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이혼의 위기에 처해 있던 그 당시의 원인을 알면 해결할 수 있을 거라 믿고, 이혼 분야 전문가와 상담하면서 조금씩 남편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상담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생활비를 벌어야한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회사를 다니지 않아서 수입이 없었던 남편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우울증 초기 단계에 접근했었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이해와 배려가 없이는 이 싸움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저희는 서로의 입장을 존중해줘야만 했습니다.

따라서 제가 내린 세 번째 결단은 남편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서자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이 새롭게 기술을 익히고 배워서 오래도록 할 수 있는 일을 찾다보니 어려웠던 경기에 먹고 살기위한 생계수단으로써는 남편의 성향과는 무관했던 정육사업이 적합하다고 느껴 정육사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기술을 반드시 필요로 했던 정육사업이 남들이 쉽게 창업할 수 없고 기피하는 업종이라는 점 또한 하나의 이유였습니다.

남편은 높은 학벌과 삼성 재직이라는 과거를 모두 지우고 밑바닥에서부터 정육에 대한 기술을 배우고 익혀야만 했습니다. 화이트칼라로 일하다가 블루칼라 일을 한다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매일 14시간씩 서서 일을 하다 보니 다리가 퉁퉁 붓기 일쑤였고, 수없이 많은 칼질로 인해 손목에 무리가 갔으며 어깨 회전근개도 파열되는 육체의 고통을 감내하면서 파스에 의존하는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손님을 대하는 데 익숙지 않았던 사람이 가족을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는 걸 보면서 저 또한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서 전보다 더 열심히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 네 번째 결단은 기도였습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새벽 기도를 다니시면서 우리 가정을 위해 기도해주시던 시어머님의 노력이 우리 부부가 힘든 시기를 극복하고 지금 이 자리에 오게 된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저는 시어머님을 따라 신앙생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님은 하나님은 열심히 사는 너희들을 저버리지 않으실 거라고 말씀하시며 하나님께 믿고 맡기면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집안의 가장인 남편이 가정의 안정을 위해 바로 설 수 있게 해달라고 매주 교회에 나가 하나님께 기도하였고, 충직한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던 저에게 교회는 이제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편안한 안식처가 되었습니다.

또한 제가 교회를 다니면서부터 가정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불평불만 가득했던 고3 딸도 방황을 하기보단 목표를 확실히 하며 학업에 열중하게 되었고, 중학생 아들도 거짓말하며 학원을 빠졌었던 철없던 시절을 보내고 자신의 꿈을 찾아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교회를 다님으로써 잦았던 부부간의 말다툼이 줄어들고, 대화를 하지 않았던 남편이 하루의 일과를 먼저 이야기하는 작은 기쁨도 느끼게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혼의 문턱에서 행복의 문턱으로 방향을 바꾸는 것은 나 자신의 노력보다도 하나님에게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 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지듯이 지나간 과거는 미래를 위한 발판이 되기 때문에 아픈 과정을 겪은 뒤에는 한층 더 성장하게 된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을 만난 이후로 조금씩 변했습니다. 혹시나 지금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신 성도님들이 계시다면 부족한 저희 가정의 모습을 통해 포기가 아닌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앞으로 우리 가정이 하나님 안에서 어떻게 멋진 변화를 이룰지 저는 기대합니다. 그리고 더욱 열심히 하나님을 알기 위해 노력하며 기도하겠습니다. 지금까지 경청하여 주신 성도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