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승천이후 유대교 안에 일어난 새로운 운동은 초기 기독교 공동체를 형성하기에 충분한 씨앗이었다. 이 중심에는 12명의 예수의 제가가 있었다. 예수는 자신의 십자가의 복음을 땅 끝까지 이르러 전파하라는 말씀과 속히 다시 오리라는 약속을 하시고 떠나셨다. 그들은 구원받은 감격과 다시 오실 예수를 만날 때 둥불을 든 거룩한 신부가 되기 위해 복음 전파에 열심을 품었다. 이제 에베소와 고린도를 비롯한 지중해 근동의 여러 도시에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교회역사가들은 이것을 초대교회의 시작으로 본다. 그들은 함께 모여 예수가 오실 것을 기대하며 기도하고 예배했다. 이것은 주로 떡을 떼는 성만찬과 죄를 회개하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세례로 드러났다. 그들은 예수가 가르쳐 준 계명을 준수하기 위해 힘썼다. 특히 구제(救濟)하고 나누어 주는 일에 열심을 품었는데 그들 중에는 자신의 재산을 모두 교회에 헌금하고 교회를 하나의 생활 공동체로 승화시켰던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은 모세의 율법만을 지키고, 장로의 유전 속에서 형식적인 신앙을 가졌던 유대교인들과는 분명 다른 모습이었다. 뿐만 아니라 로마의 황제를 숭상하고 여러 다신교를 따르던 당시의 헬라사람들과도 달랐다.
그러므로 그들은 필연적으로 두 가지 문제에 부딪칠 수밖에 없었는데 첫째로, 그들이 따르며 ‘메시아’라고 주장하는 예수에 대한 확증이었다. 유대교에서는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초대교회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구세주이심을 증명해야 했다. 이것은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을 향한 것일 뿐 아니라 예수 믿는 초대교회의 안에서도 확증되어야 할 중요한 문제였다. 이것은 예수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를 확증하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삼위일체 논쟁이다.
초대교회는 자신들이 따르며 전하는 예수에 대한 증언이 모든 교회에서 확실하게 일치하지 않는 것을 발견한다. 이것은 성경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는데, 소위 예수의 삶을 조명한 4복음서만 보더라도 같은 사건에 대해 조금씩 다른 진술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초대교회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예수에 대한 확증이었다. 그래서 2세기에 들어서면서 변증자(辨證者,apologists)들이 등장한다. 변증(辨證,apology)이라는 단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들은 기독교와 예수를 정확하게 설명하고 변호하는 일에 헌신한 사람들이다. 최초의 교부들은 속사도들이라고 하고, 이후의 교부들은 모두 변증자들로 여러 작품들을 통해 예수의 신성과 인성을 부인하는 이단사상들을 대적하며 삼위일체를 정립해가기 시작한다.
두 번째 문제는 초대교회를 향해 날아오는 심각한 박해였다. 유대교의 입장에서 보면 이들은 자신들의 공동체를 위협하는 우상숭배자들이며, 변절자요, 타락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모세의 율법을 따르는 유대교인들의 눈에 초기 기독교인들은 돌로 쳐서 죽여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또한 황제를 숭배하는 로마의 입장에서는 초대교회는 자신들의 정치적 체제를 따르지 않고 예수를 자신들의 왕이라고 주장하는 반역자들이었다. 거기에 정치적 희생양이 필요했던 당시 로마의 입장이 더해지면서 초대교회의 박해는 피할 수 없는 숙명으로 다가왔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가족과 친척들로부터 박해를 받고 공동체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발각되면 재산을 몰수당하거나 사자의 먹이로 던져져야 했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점점 도시를 벗어나 광야에서 굴을 파고 살아가는 이들도 나타났는데 이것이 바로 카타콤이다. 가장최근에 발견된 쿰란공동체 같은 공동체들이 이런 심한 박해와 핍박으로부터 신앙을 지키기 위해 생겨난 것들이다. 우리 한국 교회도 초기 선교사들과 교회들이 이런 핍박과 박해로 순교했다. 핍박과 박해는 복음이 처음 전해지는 거의 모든 땅에서 동일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니 교회의 역사는 순교자들의 붉은 피 위에 세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