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예수]주님께서 베푸신 사랑

주님께서 베푸신 사랑

고 양 화 집사 (1교구)

내가 만난 예수님안녕하세요!장식-3

저는 1교구 7속의 고양화 집사입니다. 글재주도 없고 말솜씨도 없는 저를 이 자리에 서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저는 2009년에 이미령 집사님을 통해 임마누엘교회에 등록하였습니다. 갑작스럽게 시댁 근처로 이사 오게 되면서 큰 아이를 보낼 유치원을 찾던 중에 집사님으로부터 수정유치원에 대해 알게 되어 등록을 하고 그때부터 다니게 되었습니다.

큰 아이 건우를 임신하고 늘 제 마음속엔 하나님 안에서 온전히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아이가 유치원을 다니는 3년간 저는 아이와 함께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처럼 조금씩 주님께 더 다가갔고, 지금은 전인기독학교를 보내며 엄마인 저도 1학년이라는 마음으로 아이와 함께 성장해가고 있습니다. 학교라는 곳이 아이만을 양육하는 곳이라고 생각했으나 전인기독학교는 말씀과 기도로 자녀뿐만 아니라 부모까지 양육한다는 것을 깨닫고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넘쳐납니다. 교회와 학교와 가정이 하나 되어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지, 이런 축복을 누리게 해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세 살때 아버지께서 뇌출혈로 소천하시고 어머니께서는 홀로 다섯 딸을 키우셨습니다. 저는 막내딸로 아버지께서 돌아가시자 시골 외할머니 댁에서 3년 동안 가족과 떨어져 지내다가 서울로 다시 올라왔습니다. 남들이 볼 때, 저는 언제나 밝고 웃는 아이였지만 제 마음속에는 늘 그늘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친척 중에 목사님이 계셔서 처음으로 교회라는 곳에 가게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몰랐지만 그냥 노래하고 율동하는 것이 재미있고 좋았습니다. 중학교를 미션스쿨인 숭의여중으로 가게 된 저는 목요일마다 있는 예배시간이 되면 이상하게도 불안하던 마음이 편안해지고, 찬양이 흐르면 눈물도 나오곤 했습니다. 왜 그런지 그때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중·고등학교와 대학시절 교회를 다니다 말다하는 그런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신기하게도 늘 제 주위에는 잘 믿는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가 곁길로 가지 않도록 저를 지켜주고 계셨던거라 믿습니다.

30대에 혼자가 되신 어머님께서 다섯 딸을 키우키는 쉽지 않으셨습니다. 너무 힘겨웠습니다. 언니들은 대학에 들어가서도 학비를 빌리러 친척집을 드나들었고, 어머니께서는 허약한 몸으로 쉬지 않고 일하셨지만 늘 집안은 어려웠습니다. 하시는 사업마다 잘되는 것이 없었습니다. 화가 나실 때마다 일삼는 어머니의 폭력과 폭언은 저를 두렵게 만들었고,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주님 밖에 의지할 곳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갑작스럽게 찾아온 언니의 정신질환으로 온가족은 다시 슬픔에 휩싸였습니다. 형제들이 벌어 놓은 돈은 언니의 반복되는 입퇴원에 모두 사용되고 힘든 상황은 계속 되었습니다. 20세부터 어머니께 손 내미는 일 없이 아르바이트와 공부를 병행하며 돈을 벌어도 언니의 병원비로 다 쓰고 생활비를 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철없던 저는 돈을 모으는 것 자체가 쓸모없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며 지냈습니다. 그렇게 쉬지 않고 일하고 세상적으로 살며 주님과 멀어진 생활을 해오던 저는 28세에 스트레스와 과로가 누적되어 면역체계가 무너져 류마티스 관절염과 갑상선 저하증이 오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감기, 몸살, 근육통인 줄 알았는데 증세가 점점 심해지고, 팔이 올라가지 않고 턱이 벌어지지도 않았습니다. 더욱이 머리를 감거나 옷 입는 것 자체가 끔찍한 통증 때문에 너무 힘들었습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하루하루가 지옥처럼 느껴졌습니다. 약물과 주사로 치료를 시작하면서도 일은 쉴 수가 없는게 너무 힘들었습니다.

이런 제게 하나님께서 선한 배우자를 주셔서 저는 29세에 아픈 몸으로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지만 저의 신앙생활을 존중해 주었고 아픈 저를 따듯하게 품어주었습니다. 너무나 고마운 사람입니다. 그 시기에 하나님께서 남편을 저에게 보내주시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견딜 수 있었을지 상상조차 할 수가 없습니다. 결혼 후 5년간 약물치료와 경제적 문제로 아이를 가질 수 없었는데, 아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 간절해 약물을 조절하기 시작했고 임신 중에도 계속 약을 복용해야 한다는 생각에 맘이 불편했지만, 하나님께서 병든 몸에 건강한 아이를 임신하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류마티스 환자는 임신하기가 어렵다, 유산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 걱정도 되었지만 주님께서는 저의 모든 임신기간에 역사하셨습니다. 임신을 하자마자 큰언니가 꽃동산 교회의 임산부 모임에 저를 가입시켜 주었고, 그 모임에서 이미령 집사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곳에서 저는 말씀과 기도로 위로를 얻었습니다. 너무나 많은 분들의 기도로 저는 유산할 위기를 넘겨 2007년 건강하게 큰아이 건우를 낳았습니다.

또 갑상선 저하와 목 디스크로 힘든 시간이 있었지만 치료를 받으며 2011년 둘째 온유도 건강하게 낳았습니다. 시댁에서 건물을 재건축하는 과정에 갑작스런 시아버님의 말기 암 판정을 알게 되어 온 가족이 너무 절망적이고 경제적으로도 너무 힘들었지만, 그때 저에게 큰 힘이 되어준 것은 속회였습니다. 시댁 재건축으로 갑작스럽게 시댁 식구들과 함께 6개월을 좁은 집에서 지내며, 시아버님 병간호를 하고 살림을 맡아하기에는 제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파산 위기까지 가 있던 상황이라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저는 무조건 주님만 붙들었습니다. 속회에서 말씀을 나누며 함께 기도할 때 주님께서 모든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주님의 계획하심과 섭리 가운데 건축이 무사히 마무리 되었고 아버님께서는 말기 암 판정 이후 2년간 건강하게 지내시다 고통 없이 편안히 천국으로 가셨습니다. 제 건강도 점차 좋아지고 있으며 현재는 경제 위기에서 벗어나 감사와 기쁨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언니도 치료받아 결혼도 하고, 친정어머니께서 주님을 만나셨습니다. 기적과 같이 주님께서는 모든 필요한 물질을 그 때 그 때 채워 주셨습니다. 제가 주님을 위해 해드린 것도 없는데 주님께서는 늘 저를 지켜주시고 계셨습니다.

지금 남편은 임마누엘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세례교인이 되었고, 친정어머니는 하루 세 번씩 시간을 정해놓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며 주님 안에서 살아가고 계십니다. 어머니는 아픈 언니로 인해 하루도 맘 편하실 날이 없이 지내시지만, 하나님께 기도하며 생활하신다는 것은 큰 축복이라 생각하십니다.

그리고 저는 기도는 절대로 땅에 헛되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믿습니다.

우리가 주님과 멀어져서 생긴 모든 고통, 걱정, 근심, 질병, 빈곤은 반드시 주님께서 회복시키시고 치유시켜 주실 것을 믿기 때문에 저는 행복합니다. 지금 당장 모든 것이 만족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저는 주님의 계획하심이 있음을 믿기에 감사합니다. 제 자신은 너무 작고 부족하지만 저는 주님만을 위해 살고 싶고, 주님의 뜻을 이루시는데 도구가 되길 원합니다. 주님께서 제게 부어주신 그 사랑 잊지 않고 주변에 사랑을 베풀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이렇게 제가 사랑하는 하나님을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은 처음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아프고, 지치고, 힘들고 어려운 분들이 주님의 사랑을 만나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