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김종희 장로
카타콤은 무덤으로 사용하기 위해 좁은 통로로 이루어진 지하묘지이며 가장 어렵고 자랑스러웠던 3세기 동안의 기독교를 표현하고 있다. 죽음과 영원 앞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로마제국으로부터 박해를 받자 유용한 은신처 카타콤에서 생명과 신앙을 지키기 위해 이곳을 피난처로 사용하였으며 카타콤 교회를 조직함으로써 그리스도교 성장을 이루었다 한다.
무덤의 형태는 수직 통로를 만들고 그 밑에 동굴과 같은 공간을 만들었다. 통로는 좁고 가파른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고 복도는 좁고 미로처럼 만들어져 구조를 모르는 사람은 나오기 어렵다. 너무 어두워서 기독교인들이 나올 때는 거의 장님이 되어 나오며 전염병이 돌면 많은 사람이 죽었다 한다.
IXOCE(익투스)라는 암호는 물고기를 뜻하지만 권능자를 뜻하기도 한다. 기독교인들은 이 물고기를 그리며 서로를 확인하며 그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주님께 감사하고 찬양하고 믿음의 충절을 지켰다.
첫 계단을 내려갈 때부터 나의 심장은 뛰었고 그 어떠한 숭고한 기분에 숙연해짐을 느꼈다. 갱도 안의 침묵 속에서 그 옛날 순교자들의 순수하고 뜨거운 믿음이 느껴졌다. 여행에 참여하게 될 때 초기신앙 유적지를 돌아보며, 또 그 발자취 속에서 많은 기도와 묵상으로 나의 믿음을 돌아보자고 기도했다.
물질만능의 세상, 퇴폐와 타락 속에서 난 조금씩 만성화 되어있지는 않는가?
우린 서로 작은 실수에도 지적하며 냉정해진 것에 서로 실망하고 가슴 아파하며 외로워 한다. 한결 같은 사랑으로 옆에서 바라봐주는 그런 친구를 그리워 한다. ‘난 그런 신실한 이웃이 되고 있는지?’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에는 “내가 나에게 죄 지은~”이 아니고 “우리가 우리에게서 죄지은~”이라고 되어있다.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라는 성격을 뛰고 있다고 한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하나 되어 서로 인내하며 허용하며 격려하며 사랑하는 것이 당신의 몸을 희생하면서까지 우리를 위한 사랑을 확증하신 예수님의 길을 따르며 가는 것일 것이다.
그렇다! 내 주님께서 주신 이 소중한 믿음을 지키며 감사하며 사랑하며 더 뜨겁게 나아가리라!
유은수 권사
2014년 7월쯤 더운 날씨와 함께 점점 지치고 힘든 날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다가 병이 나거나 주저앉으면 어쩌나 주신 사명 끝까지 감당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속으로 걱정하고 있을 때 김국도 목사님께서 유럽 부흥회에 참석하라고 권면을 하셨고 남편도 흔쾌히 허락을 해주었습니다.
‘하나님 이번 유럽 여행은 나의 여행이 되기를 원합니다. 김국도 목사님의 부흥성회에 내가 먼저 은혜 받고 성령 재충만 받기를 원합니다.’ 다시 힘을 얻어서 한국에 돌아와 주신 사명 끝까지 지치지 않고 잘 감당하게 해달라고 금식하며 기도로 준비했습니다.
첫 날 부푼 가슴을 안고 김국도 목사님과 사모님, 모두 6명의 여행은 시작되었습니다.
제일 먼저 파리 퐁뇌프교회 (김승천 목사님)에서 김국도 목사님께서 저녁예배에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실 때 눈물이 나오도록 은혜를 받았습니다.
파리 에펠탑의 웅장한 모습은 하늘 끝까지 우러러 보는 것 같았습니다. 세느강 다리에 연인들이 사랑의 표현을 자물통으로 묶어 놓아 다리 전체가 황금색이었습니다. 르부르박물관에서는 너무 많은 그림 중에 어느 그림부터 보아야할지 나 자신 우왕좌왕 했었습니다. 눈썹이 없는 미완성작 ‘모나리자’는 멀리서 봐도 많은 사람이 웅성거리고 있어서 금방 찾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에펠탑을 가운데 두고 3박 4일 파리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로마로 이동했습니다.
로마 한인교회 강평우 목사님은 유머와 위트가 많은 분이었습니다. 로마에서의 부흥회는 잊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예배가 시작될 때 젊은 성악가들의 아름다운 찬양대가 시작됩니다. 한국에서 항상 듣는 말씀이지만 로마한인교회에서는 내가 은혜를 받고, 힘을 얻고, 성령 재충만을 받아야 된다는 결심이 있어서 그런지 나를 위한 부흥회인가 순간 착각도 했습니다.
하루는 김국도 목사님은 부흥회 인도하시고 우리는 새벽에 카프리섬 관광 길에 올랐습니다. 배를 타고 섬에 도착해 정상에 올라 바다를 내려다 볼 때 거기 또한 한 폭의 그림이었습니다.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햅번이 아이스크림을 층계에 앉아 다리를 흔들며 먹던 자리에 김종희 장로와 같이 앉아서 웃어봅니다.
폼페이 관광.. 폐허가 된 하나의 도시를 돌아보면서 지금도 낯이 뜨거운 그림과 조각이 있음을 보고 쾌락과 타락이 얼마나 심했으면 하나님의 노여움을 샀을까.. 생각해 봅니다.
카타콤.. 기독교인이기에 학살과 박해를 피해 쫓기고 또 쫓기며 조상들의 깜깜한 지하 무덤 속을 미로처럼 파고 들어가 언제 로마군에게 잡혀갈지, 언제 내 목숨이 굶어 죽을지 모르면서도 오직 신앙 하나를 붙잡고 산 로마인들이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긍휼히 보시고 지금 후손에게 복을 주시는 걸까.. 로마의 카타콤와 터키의 갑바도기아를 비교해 봅니다.
로마에서 북쪽으로 700 Km 올라가면 볼자나르 꼬르띠나 마을이 나옵니다. 강평우 목사님 부부와 손양원 목사님의 외손자 김동일 집사 부부의 3박 4일 안내를 받으며 출발했습니다. 도착했을 때는 저녁이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나가보니 알프스 산맥과 오스트리아와 접해 있어서 스위스 보다 가까이 알프스를 직접 차로 다닐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후니쿠라 타보셨나요? 너무도 아름다운 경치에 작은 목소리로 (여보 미안해~ 이렇게 좋은 곳에 나 혼자 와서..) 외쳐봅니다. (아름다운 이곳에서도 싸움과 시기가 있을까?) 1차 대전 때 치열한 격전지였다고 합니다.
잘츠부르크의 미라벨궁전과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시(市), 국민 전체가 모차르트로 인해 생계를 유지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자동차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왔던 그 때 (2차대전 때) 영화에서 본 아름다운 집이 지금은 많이 낡았구나.. 생각해 봅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김학우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스페인은 피카소도 있고, 천재 건축가이며 설계가인 가우디의 성가족성당의 건축은 언제까지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가우디가 성가족성당을 짓기 위해 영감을 받은 곳, 가우디가 살던 집, 고속기차로 바르셀로나에서 마드리드까지 달려봅니다.
열정적인 플라밍고 댄스, 프랑코 총통의 묘를 강대상 앞에 묻어 넣고 커다란 성당을 지었는데 그 규모가 어마어마했습니다. 정치범 20만 명이 16년에 걸쳐서 지었다고 합니다. 스페인의 장엄한 왕궁도 들어가 봅니다. 대충하고 포르투갈로 넘어가 보자. 강병호 목사님이십니다. 우리들에게 사진 1장이라도 더 찍어 주시려고 열심이셨던 목사님이셨습니다.
2000년 역사를 이룬 오비도스 성벽 ½바퀴를 1시간 10분 동안 석양을 바라보며 걸었습니다. 아름다움의 극치였었고 한 번 더 표현을 하자면 웅장하고 장엄한 성이었습니다. 오비도스성을 뒤로하고 떠날 때 나는 ‘오비도스 성이여 안녕’ 하면서 자꾸 뒤를 돌아봅니다.
마젤란이 세비야 항에서 출항한 곳, 땅끝 마을, 나자로 마을, 과거 그리스도교의 성직자들이 기도한 돌집 수도원.. 얼마나 춥고 배고팠을까? 여행을 거의 마쳤을 때 유럽 나라들은 조상들로 인해서 자손대대로 너무 이득을 많이 보며 잘 먹고 사는 나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우리 한국을 생각할 때에 식민지 속에서, 전쟁 속에서, 가난하고 병들어 못먹던 나라가 지금은 경제대국을 이루는 나라라고 큰소리를 치면서 ‘우리 대한민국은 역시 위대한 나라구나’ 자부심을 갖습니다. 암스테르담은 낙농국가인데 거기서 치즈나 버터를 넉넉히 선물로 사갈까? 우리는 꿈에 조금은 부풀었습니다.
비행기 연착에 마지막 KAL을 타고 집으로 오는 길.. 우리는 주위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습니다. 저에게 다시 힘을 주시고 활력을 주셔서 12월까지 또 열심히 주신 사명 감당 하겠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김국도 목사님, 사모님 감사합니다. 여행동지들 재미있었지? 끝으로 여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