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예수] 절 사랑하시기에 수없이 연단시키셨던 주님!

 

절 사랑하시기에 수없이 연단시키셨던 주님!

 

    

 

 김 민 서 집사 (12교구 12속)

 

 

 

할렐루야!

 

1987년 이창섭이라는 남자와 사내결혼을 하여 현재는 두 아들을 두고 있습니다.

 

결혼생활을 시작할 무렵, 시어머니께서는 집 근처에 있는 금란교회를 다니는 것이 어떻겠냐며 신앙생활을 권유하셨고 저도 어머니의 뜻을 따라 교회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점점 믿음이 자라 세례도 받게 되고 속회와 선교회를 통해 함께 은혜를 나누며 매우 행복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남편은 주님을 섬기지 않았습니다. 건설업에 종사하는 남편은 잦은 술자리로 늘 늦게 귀가를 하였는데 이런 남편을 보며 함께 살아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갈등이 참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속장이셨던 이길용 권사님의 기도와 위로로 힘들고 어려웠던 시간들을 잘 견딜 수가 있었습니다. 눈물로 무릎 꿇고 함께 기도해 주셨던 권사님께 너무나도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은 저를 사랑하셨기에 갈등 많은 우리 부부 사이에 귀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1989년 큰 아들 유섭이가 태어나고 시부모님께서도 천호동으로 이사를 하시게 되었습니다. 저희도 망우리에서 시댁 가까운 곳인 방이동으로 장막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 간증했던 아딸 대표이신 이경수 전도사님은 저의 시댁 사촌동생이기도 합니다. 시어머님께서는 이경수 전도사님 부친께서 개척목회를 하시니  함께 이곳에서 교회를 섬기자고 하시어 새벽예배와 교회봉사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1994년 개척교회가 먼 곳으로 이전하게 될 무렵 우연히 임판임 권사님의 전도로 두 자녀와  임마누엘 제단에 등록을 하게 되어 지금까지 20여 년간 섬기고 있습니다.

 

그 당시 김국도 담임목사님의 설교 말씀은 친정아버지 같이 따뜻하고 정겨워 어린 시절을  생각나게 하였는데 바로 내가 찾는 주님이 이곳에 계심을 확신하였고 정말 순수한 믿음으로 주님을 더 가까이 더 깊이 섬기겠노라고 다짐을 했습니다.

 

임마누엘교회에 등록한 지 얼마 안 되어 신경성, 만성위염으로 힘들게 하루하루를 보내시던 언니부부를(현재 9교구 김영희 권사님 내외)를 전도하게 되었습니다. 믿음의 동역자가 있어 저는 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저보다 믿음이 좋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신앙의 축복을 받은 정말 좋은 분들입니다.

 

믿음 좋은 신앙이란 진정으로 순수하게 믿고 순수하게 섬겨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축복을 주시는 것 같습니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던 저에게도 시련이 찾아왔니다.

 

2001년도 큰아이(유섭)가 호산나찬양대를 할 때였습니다. 부활주일 저녁 기쁨으로 찬양예배를 마치고 수고한 대원들에게 담임목사님께서 햄버거를 주셨습니다. 마침 배가 고팠던 아들 녀석은 급하게  햄버거를 먹다가 기도가 막혀 의식을 잃고 생사를 다투게 되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어미로서 해 줄 수 있는 것은  “하나님, 하나님께 영광의 찬양을 드린 우리 유섭이, 음식물이 기도를 막아 지금 생사를 다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살려주세요.” 간절하게 눈물로 기도를 드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의식 없이 생사를 다투고 있는 어린 아들을 지켜보는 어미의 심정을 겪어보지 않으신 분은 정말 모르실 겁니다. 정말 기도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담임목사님, 부목사님 외 교구지도자와 많은 성도님들의 간절한 기도로 3일 만에 기적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기도에서 폐로 옮겨간 햄버거 패티 조각이 큰 기침과 동시에 밖으로 튀어나온 것입니다. 할렐루야!

 

전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유섭이를 살려주셨다고 확신합니다. 유섭이를 살려주심에 감사하여  돌과 백일에 들어온 모든 금반지를 감사예물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하나님 우리 유섭이를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유섭이와 진섭이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 건강할 수 있도록 꼭 책임져 주세요”. 간절히 울부짖으며 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10여 년이 넘도록 지금까지 두 아이들을 건강하게 지켜주셨고 앞길도 책임져 주셨음을 고백합니다. 다시 한 번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20여년 넘도록 신앙생활을 하면서 제일 가까이 있는 남편을 전도하지 못한 것이 하나님 앞에 너무나도 부끄럽습니다.

 

‘나와 아이들만이라도 열심히 섬기면 하나님이 다 채워주시고 복주실거야’하며 안일한 생각으로 자신했지만 1999년 남편의 사업 부도로 많은 부채가 생기고 어려움이 닥치게 되었습니다. 집안의 모든 가전제품은 빨간딱지를 붙여야만 했고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는 빚더미에 남편은 숨어 살아야 했으며 저는 밤낮으로 일을 해야 했습니다. 살던 집을 다 정리하고 시댁 지하방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너무 힘든 생활고로 하루에도 몇 번이나 죽고 싶은 심정이 들곤 했습니다. 전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5년간을 식구들과 연락을 두절한 채 생활비도 한 푼 보내질 않았고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시아버님의 핍박으로 많은 시달림과 고통도 겪어야 했습니다. 제가 살림 관리를 못해서 다 거덜 냈다고 하시면서 이웃 사람들한테 남부끄러우니 이 집 며느리라고 절대 말하지 말라며 저를 경멸하셨습니다. 전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아시지요, 하나님은 아시지요” 기도하곤 했습니다.

 

맘고생으로 흘린 눈물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주야로 힘들게 일한 수입은 빚 갚는데 거의 들어가게 되니 아이들과 도저히 생활을 해 나갈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지금의 친언니인 김영희 권사가 생활비 일부를 주다시피 하여 간신히 버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시부모님은 집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 하라고 하시며 끊임없이 핍박을 하셨습니다. 견디기가 너무 힘들어 몇 번을 아이들과 보따리를 싸들고 나오려 했지만 언니의 만류로 꾹 참으며 견디었습니다.

 

대형버스면허를 취득하여 언니 지인의 도움으로 버스회사에 취직을 하게 되었고 빚도 조금씩 갚으면서 생활도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렵고 힘든 상황 가운데서도 언니를 통해 살길을 주셨습니다. 많은 도움을 준 언니 김영희 권사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방탕한 생활로 식구들과도 연락을 끊었던 남편 없는 그늘에서 5년 동안을 전 아이들과  주님만 바라보고 죽기 살기로 살았습니다. 직장생활 10년간 제가 번 것으로 그 많은 빚을 청산한 것은 하나님의 도와주심이라 생각합니다.

 

빚을 다 갚을 즈음 폐인이 된 줄 알았던 남편이 그래도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아이들 아빠이기에 모든 것을 용서 하였고 지혜롭지 못했던 저의 모습을 돌아보며 다시 한 번 회개하였습니다.

 

2011년 8월, 갑작스러운 시어머님의 치매진단으로 35년간 시어머님이 하시던 가게를 전수받아 지금은 남편과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역사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기도하고 간구하면 응답해 주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올해는 또 저에게 남편 구원시키려고 7여선교회 총무라는 사명도 주시고 이렇게 간증도 하게 하셨습니다. 얼마 전 큰형부(김원진 권사님)께서 저희 가게 일을 도와주시면서 제 남편을 곧 전도하겠다고 하셔서 전 너무 감사했습니다. “기도하면 이루어지이다.” 전 올해가 가기 전에 남편구원을 최우선으로 하겠노라 하나님과 약속했습니다. 전 새벽3시에 가게로 출근할 때 핸들을 잡고 남편이름을 부르며 “이창섭 남편 구원!”을 10회 부르짖으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살아서 역사하시니 정말 남편을 구원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저희 가정을 지금까지 지켜 보호하여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멘. 

내가 만난 예수-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