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 장모님의 졸업식

    장모님의 졸업식

    

김 재 용 권사 (11교구)

깡마르고 은발 성성한 장모님

일주일 곡기 끊으시곤 홀연히 떠나시네

1분 1초 망설임도 없이

뗏장이 막 푸르러지려는 2월 하순

참 멋진 이별이다 

당신이 남긴 빈자리 하얀 수묵화다

곱디 곱게 침묵중인 장모님의 졸업식

이 세상 졸업식이 열렸다 보령 아산병원에서

무릎으로 씌어진 84년 인생사

남부러운 졸업장은 없어도

꽃다운 5녀 별다운 2남의 소중한 씨앗은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

헤아릴 수 없는 알곡을 거둬들였다

사뿐사뿐 밟고 온 날들 품이 넓고 깊어

본향 가는 길

하객의 발걸음 수북히 쌓여

빈틈없이 불어대던 겨울바람도 감동을 먹곤

포근한 봄날을 선물해

입관에 앞서 염습을 바라보는 숙연한 눈초리

작은 덩치에 풍기던 야무진 생의 날

내 맘을 숭숭 베어 버려

친지 자녀들 눈물샘을 쓱쓱 베어 버려

이 세상 깔끔한 소풍인 듯 잔잔히 웃고만 있네

입술은 옅은 홍색 실 이요

뺨은 향기로운 꽃밭, 봄날의 풀언덕이로다

비둘기 같은 두 눈 지그시 감고

조롱조롱 가지에 매달린 석류를 바라보네

살아있는 듯 콧김은 복숭아 냄새를 풍기고

이 모습 이대로

여자중의 여자요 예루살렘의 딸이로다

혹 장인 어른께서 알아 보실라나 걱정이 앞선다

장인 무덤 보고파 넘 보고파도

노구에 갈 수 없어 사람 사 금화벌초 하셨다지

살아 못가니 죽어서라도 가고펐나

20년전 사별한 장인 어른과 합장하러 가는 길

죽본 선영이 지척이건만

너무 오래된 이별이기에 재촉하는 장모님

다섯 사위와 외손자 손에 들리어

논두렁길 밟으며 인삼밭을 지나 어여 가잔다

고요한 산골짝 질펀한 굴삭기 소리 따라

하관하는 관 위로

수만 송이 국화 꽃잎 조근조근 이별이다

흙으로 돌아간 장모님

더없는 씽씽한 흙내 우긋이 뱉고 있다성화지 독자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