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만 한 믿음
권 원 증 집사 (2교구)
“원증아 교회 나가면 친구들 많이 사귈 수 있으니까 다녀봐라” 초등학교 5학년 때 서울로 전학 보내면서 행여나 친구들도 못 사귀고 적응하지 못할까봐 걱정되신 아버지 권유로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것이 믿음 생활의 시작이었다.
온 집안을 통 틀어 나 혼자만 교회에 다녔었기에 같이 살던 오빠와 새언니는 토요일과 주일 빠짐없이 나가는 동생이 걱정되었는지 교회로 찾아오기도 했었다.
중·고등부 학생회를 거치면서 부모님을 위해서 기도하고 나만을 위한 삶은 살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지만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이사를 하게 되면서 다니던 교회에서 멀어지게 되었고, 결혼과 함께 신앙생활은 완전히 단절되어 버렸다.
교회 보다는 성당을 선호하는 남편과 함께 살면서 남부럽지 않은 결혼 생활이었지만 남편이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하면서 부터는 수입이 보장되지 않아서 근심이 생기기 시작했고 경제적으로도 풍족하지 않아서 나도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끝없는 터널을 지나야 되는 것처럼 마음이 암울할 때 비록 신앙생활은 하지 않았지만 겨자씨 만한 믿음이 있어서 마음속으로는 꼭 교회에 가야지 하는 생각이 있었고 주님이 사랑해 주셔서인지 주위에는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이 늘 가까이에 있었다.
그때 만난 분이 작은 아이와 한 반이었던 김종애 집사님이었고 주님이 기둥으로 세워주신 김채숙 권사님이었다.
한결같이 곁에 있어주는 김종애 집사님과 늘 기도와 사랑으로 베풀어 주시는 김채숙 권사님을 뵈면서 교회 근처에는 얼씬도 안 하던 남편이 내가 교회에 갔다 오면 다녀왔냐는 인사를 하고 아는 체하기 시작했다. 이때다 싶어서 교회에 같이 가자고 할라치면 “당신이나 열심히 다녀” 하고는 고개를 돌리면서 모른체 했다.
그 즈음 남편은 일이 잘 풀리지 않아서 은행 대출이 계속 이어지게 되었고 내가 아르바이트를 한다고는 했지만 큰 도움이 못되었기에 결국에는 살던 집도 팔고 이사를 하게 되었다.
그래서 하게 된 것이 골목냉면이었다. 오랜 고심 끝에 하게 된 결정이어서 두려움과 불안한 마음이 있었지만 새로 시작하는 일인 만큼 열심히 해 보자고 다짐하면서 김종애 집사님이 하는 골목냉면 수유 본점으로 가서 우리 부부는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일을 배우면서도 가게는 분주히 알아봐야 했기에 여기저기 둘러 볼 수밖에 없었는데 수없이 돌아 다녀도 권리금과 월세를 생각하면 마땅한 자리를 찾기가 어려웠고 괜찮다 싶어서 계약이라도 할라치면 주인의 마음이 변해서 계약이 틀어지곤 했다.
그러자 남편은 나보고 기도를 하라고 하기에 같이 기도를 해야지 나만 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하자 자기는 양심에 찔려서 처음부터 무엇을 달라고 할 수가 없기 때문에 기도를 할 수가 없단다.
우여곡절 끝에 계약이 성사되고 오픈 날짜가 잡히면서 개업예배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나만 교회에 가서 좋은 말씀 많이 듣고 오라던 남편은 늘 관심 가져 주시고 기도해 주시는 김채숙 권사님과 박종일 목사님, 김혜란 전도사님 그리고 구역 식구들의 기도 덕분인지 선뜻 교회에 다니겠다고 선언을 했다.
심지어는 아침 잠이 많아서 주일날이면 해가 중천에 떠야 일어나곤 하던 사람이 교회에 가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담임목사님 말씀이 너무 좋다면서 새벽부터일어나곤 할 정도가 되었다.
이제는 아이들에게도 교회에 같이 가자고 말을 꺼낼 정도가 되자 아이들은 낯선 아빠 모습에 진정 우리 아빠가 맞느냐고 하면서 눈이 휘둥그레진다.
생전 처음으로 하는 식당이어서 인지 몸이 고되고 힘들어서 사소한 일에도 짜증을 내고 남편과도 그동안 어떻게 참고 살았나 싶을 정도로 많이 싸우지만 틈나는 대로 냉면 드시러 들러 주시는 교회 식구들이 있어서 힘이 나고, 보잘 것 없지만 자녀 삼아 주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앞으로의 시련도 헤쳐나갈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