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예수]내가 주를 찬미하나이다

가 주를 찬미하나이다

류 지 선 권사 (6교구)


“기도하노니 주여, 내 아들 쌍둥이 형제가 주님 영광 돌리는 일에 쓰임 받게 하소서!”
“주님이 뜻하신 일 헤아리기 어렵더라도 언제나 주 뜻 안에 내가 있음을 믿노라”

내가만난예수

 

오십 년 전의 가난을 이야기 하는 것은 진부한 일이다. 그때의 가난은 특별히 부끄러운 일도 아닌 일상의 환경이던 시절이다. 그러므로 나의 어린 시절의 환경이나 우여곡절을 다 이야기 할 수도 없다. 다만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아 있는 십대 후반 고향 인근의 사찰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주지스님의 시중을 들던 적지 않은 기간을 생각하면 오늘의 내 종교적 신념은 엄청난 변화를 불러 왔다.

 지금의 내 나이는 망육(望六-육십을 바라보는 나이)이다. 의식주의 보편적인 해결과 눈부신 의학의 발달로 아직은 신체적으로 건강하지만 돌아다보면 실로 허망한 한 생애를 살아온 상념들이 나를 괴롭힌다. 안정된 철학적 소신이 부족했던 젊은 시절의 내가 가진 것은 혈기 하나밖엔 없었다. 겉보기엔 자신감이 넘쳐 보였지만 세상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는 큰 바위덩어리였다.

 젊은 시절 나는 수도권의 영세한 한 제조업체에 몸을 담고 일하다가 전자부품 제조업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불과 몇 년 되지 않아 크게 실패를 하였다. 고된 삶의 현장에서 몸부림치는 것조차 포기했던 서른의 시기를 지나 이십여 년 동안 나는 가장으로서 경제적 활동에 낙제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실력도 없고, 돈도 없으며, 빽도 없다”는 3무(3無)론의 자조적인 멘트만이 책임을 회피하는 무기가 되었다.

 

 그런 속에서도 세월은 잘도 흘렀다. 이러한 삶 안에서도 내 마음 속으로 깊이 간구하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열망이었다. 대를 물리는 폐습이 싫은 것은 어느 부모에게나 있을법한 정서다. 아내의 고된 경제활동으로 연명을 하는 수준에서 아이들은 초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학교 도서관의 거의 모든 책을 대출하여 탐독하는 공부벌레가 되었다. 극빈층 도시 빈민이나 다름없는 생활 속에서 변변한 참고서 한번 제대로 사 주지 못한 부모가 언감생심 사교육에 대한 꿈을 꾸기는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꼬박꼬박 장학금을 받으며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대학에 나란히 진학을 했으며, 지금은 박사과정에 있다.

 옛날에는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처럼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이 공부를 꽤 했다고 하지만 오늘의 현실은 그렇지 못함을 잘 안다. 공부를 하는 아이의 영양 상태를 과학적으로 체크하고, 자가용으로 등교시키고, 운동 프로그램을 가동하면서 정서적 안정과 물질적 풍요를 갖춘 환경 속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이 우수한 성적을 내고 있음이다. 그런데도 제 부모가 가진 부족한 가정환경을 탓하지 않고 의연하게 사회적 책임을 지려하는 내 자랑스러운 쌍둥이 아들 철이와 석이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나를 지탱하는 그 어떤 에너지도 없이 폐인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가끔은 아이의 동창 학생들의 면면을 볼 기회가 있었다. 고위직 공무원의 자제이거나 기업을 운영하는 뚜렷한 인사의 자녀들이 대부분이다. 좋은 환경 속에서 전폭의 후원을 업고 공부한 그들을 보면 우리 아들에게 때로는 미안한 마음이 골수에 깊어진다.

 나는 늘 피폐하였으나 십 수 년 전 교회에 첫발을 디디기 전에도 끊임없이 기도했다. 기도라는 언어적 표현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열망이었고, 기원이었으며, 깊은 마음 속 바람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 그 기도를 들어줄 전지전능의 그 분이 예수님이어도 좋고 부처님이어도 좋았다. 아니면 산신이었던들 어떠했을까. 다만, 내 비루먹은 삶의 애환을 모두 짊어지고 가도 좋으니 “내 아이들에게 은총을 내리셔서 건강하고 아름다운 사회의 일원이 되어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가 내 기도의 골자였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의 외마디의 비명이었으리라.

 운영하던 전자부품 제조업에 실패한 후 단칸방에서 감내하는 겨울은 혹독했었다. 공장에서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시던-그분은 무던히도 나를 위해 많이 기도하셨다-아주머니께서 출석하시던 교회에서 크리스마스이브에 예고 없이 보내 준 몇 포대의 쌀과 연탄을 내 평생 잊을 수 없다. 연탄 쌓아 놓을 곳이 없어 당황해 하던 쌀집가게 주인의 모습이 생생하다. 이런 사랑 어디서 받아볼 수 있으랴. 이것이 과연 예수님의 사랑이란 말인가! 어린 쌍둥이 형제가 교회를 다녀와서 저희들끼리 주기도문을 줄줄 외우며 기도하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교회에서 받은 사랑도 큰데, 쌍둥이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는 나도 예수님을 영접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주님! 내가 주님을 믿사오니 주여 나를 받아주소서. 내 죄를 회개하오니 나를 용서하소서.

 권사의 과분한 직분을 얻은 지금까지도 나는 그저 긍정의 에너지를 가지고 열심히 기도할 뿐, 남들이 다 거친 성령의 불길은 아직도 체험하지 못했다. 기도가 부족한 탓이리라. 그러나 나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믿음이 있는 자 모두에게 사랑의 은혜를 내리신다는 사실을 확신하며, 내 기도는 결코 멈추지 않기를 기도하는 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