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말씀] 당신에게는 샘이 필요합니다

당신에게는 샘이 필요합니다

설교 김 정 국목사

사사기 15:18~19

18
삼손이 심히 목이 말라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께서 종의 손을 통하여 이 큰 구원을 베푸셨사오나 내가 이제 목말라 죽어서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의 손에 떨어지겠나이다 하니

19
하나님이 레히에서 한 우묵한 곳을 터뜨리시니 거기서 물이 솟아나오는지라 삼손이 그것을 마시고 정신이 회복되어 소생하니 그러므로 그 샘 이름을 엔학고레라 불렀으며 그 샘이 오늘까지 레히에 있더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 예배 가운데 함께 하시는 줄 믿습니다.

현대인들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한 가지는 항상 목말라 있다는 것입니다. 목마르다는 말은 만족함이 없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성취해도 우리에게는 충분한 만족감이 생길 수가 없습니다.

라면만 먹고도 감사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라면만 먹으라고 하면 아마 화를 내고 말 것입니다. 계속해서 우리의 삶의 질이 더 나아지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남자들의 지배욕은 성취욕과 비교할 수 있습니다. 점점 더 비싼 기계들을 선호하는 남편들의 모습을 보신 적 있으신가요? 더 좋은 컴퓨터로 더 좋은 스마트 폰으로… 있는데도 또 사고… 취미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끼리는 ‘도박을 하면 한 번에 집이 망하고 사진을 찍으면 서서히 집이 망한다’는 우스게 소리를 하곤 합니다. 카메라, 렌즈, 받침대, 가방, 악세사리까지 계속해서 업그레이드를 시키다보니 나온 말 같습니다.

남자들은 자동차에 대한 욕구도 대단합니다. 처음에는 굴러가기만 하면 좋다고 하더니 점점 더 고급스러운 차를, 그리고 성능이 좋은 차를 원하는 것이 남자들의 모습입니다. 비쌀수록 독특할수록 자부심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여성들은 어떨까요? 처음에 결혼할 때는 ‘당신만 있으면 돼요’라고 결혼 생활을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집안 평수가 넓어지는 것을 마다할 여성들은 없습니다.

우리 욕심의 끝은 어디일까요? 언제 쯤이면 만족이란 것을 느낄 때가 올까요?

우리의 목마름을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세상일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목마름을 해소할 방법은 오로지 예수그리스도의 마르지 않는 샘물밖에 없습니다. 길어도 길어도 바닥이 드러나지 않는 샘입니다. 나누어 주고 또 나누어 주어도 모자라지 않는 샘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우물가에 인생의 문제를 짊어지고 사람들의 눈을 피하여서 대낮에 물을 길으러 나온 여인처럼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로 고민하며 걱정하는 성도들에게 영원한 샘을 허락하시는 주님의 역사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삼손의 이름이 적혀 있는 「사사기」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른 민족들로부터 보호하시려고 세우신 사사들의 이야기입니다.

여섯 명의 대 사사로는 옷니엘(삿3:7-11), 에훗(3:12-30), 드보라(4~5장), 기드온(6:1~8:32), 입다(10:6~12:7), 삼손(13~16장)이 있고, 여섯명의 소 사사로는 삼갈(3:31이하), 돌라(10:1,2), 야일(10:3-5), 입산(12:8-10), 엘론(12:11,12), 압돈(12:3-15)이 있습니다. 성경은 사무엘까지를 마지막 사사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삼손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블레셋으로부터 보호하시려고 세우신 사사입니다. 소라 땅 단 지파 마노아의 아들로 출생하여서 20년동안 이스라엘의 사사로 활동하였습니다. 삼손은 어렸을 때부터 나실인의 규례대로 자랐습니다. 삼손이 힘이 센 사사라고 되어 있는데 그 힘은 머리를 깎지 않는 약속을 지킨 것에 기인하고 있습니다.

삼손의 파란만장한 인생 중에서 한번은 당나귀 턱뼈로 블레셋군대 1000명을 때려 눕히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9. 이에 블레셋 사람들이 올라와 유다에 진을 치고 레히에 가득한지라.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새로 번역된 성경에는 유한 표현을 썼습니다. 예전 성경에는 ‘편만한지라’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편만하다’ 라는 단어를 히브리어로 ‘나타쉬’ 라고 표현했는데 나타쉬는 ‘강타하다, 밀치다’ 라는 강압적인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레히 지역에 들어와서 그 지역 주민들을 괴롭게 했다는 뜻입니다.

그들의 요구는 삼손을 결박하여서 블레셋에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괴롭힘에 지친 레히 사람들이 삼손을 결박하여서 블레셋 사람들에게 내어놓습니다. 결박당한 삼손을 보고 블레셋 사람들은 승리의 환호성을 지릅니다. 마치 이스라엘을 얻은 것처럼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블레셋 사람들의 그 환호성을 들을 때에 어떤 일이 있어났는지 아십니까? 사람들은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절망하였을지 모르지만 여호와께서는 삼손을 묶은 줄을 불탄 삼과 같이 끊어 놓으셨다고 하십니다.

예전에 저희 어릴 적에는 수퍼히어로들이 유행을 했었습니다. 슈퍼맨은 날아다니다가 어디선가 무슨 일이 생기면 나타나서 서민들을 도와주었고 600만불의 사나이, 소머즈, 배트맨, 로빈 등이 그랬습니다. 본문 속의 삼손은 ‘헐크’라는 인물에 비유할 수가 있지요. 갑자기 온몸이 초록색으로 변하더니 미친 듯이 힘이 세지는 거죠.

본문의 삼손은 헐크처럼 힘이 세지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성경에는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임할 때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영이 임하면서 묶인 밧줄이 풀려나가고 땅 바닦에 있는 나귀 턱뼈를 들어 한더미 두더지로 무장한 블레셋 군대 천 명을 죽였습니다.

이 사건에서 우리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여호와의 영이 임하게 되면서 기적적인 사건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아무에게나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나실인처럼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고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로 노력한 사람에게 여호와의 영이 임하니 보잘 것 없는 그들이 적군을 죽여 무더기로 쌓아 놓는 잠재력을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손이 묶여 있는 것은 우리들이 보는 관점입니다.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호들갑을 떨고있죠. 우리에게는 대수로운 일이지만 여호와께는 우리의 손이 묶인 것은 아무것도 아닌 일로 보십니다. 내가 나귀턱뼈처럼 쓰임을 받거나 삼손처럼 쓰임을 받거나 무엇보다도 주님께 쓰임받겠다는 의지가 주님의 전능하심을 깨운다는 것입니다.

삼손에게는 대단한 성취의 사건입니다. 나귀턱뼈로 천 명을 쓰러뜨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항상 성취 후가 문제입니다. 높은 성취감은 커다란 허탈감을 가져오게 되어있습니다. 영광이 크다고 하면 그 영광의 그림자도 함께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은퇴가 허무하면 허무하게 느껴질수록 감사도 잊지 않으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허무감이 클수록 성취도가 높기 때문입니다. 은퇴하셔도 허무하실 필요 없습니다. 은퇴하시고 30년은 더 사시는데 허무할 필요가 뭐가 있습니까? 또 열심히 뭔가를 다시 시작하면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일반적으로 큰 일을 성취하게 되면 그 일로 인한 그림자같은 허탈감에 빠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공허함을 달래고자 일탈을 꿈꾸게 됩니다. 일탈 중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중독」 Addiction 이라는 것에 빠져들곤 합니다. 연예인들은 사람들 앞에 서야 사는 맛을 느끼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 화려함 뒤에 공허함을 메우고자 마약도 하고 도박도 한다고 합니다. 프로포폴 사건들, 대마초, 마약주사 술담배가 그 예들이지요. ‘이러한 것들 때문에 천국에 못가나요?’ 하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계신데 그것 때문에 못가진 않을 겁니다. 오히려 천국에 빨리 갈까봐 이땅에서 복받고 살라고 드리는 말씀이지요.

세상의 어떤 일들도 우리를 목마름에서 구원할 수가 없다는 것이 더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러한 마약, 스피드, 포르노그라피와 같은 강력한 뇌파를 가진 중독은 뇌구조가 비슷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견디지 못하고 실행에 옮겨 자신을 이 허무한 일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해결책은 과연 무엇이란 말입니까?

삼손 턱뼈를 자기 손에서 던져버리고 그 지역이름을 라맛 레히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라맛 레히는 턱뼈의 산이다. 턱뼈로 죽인 사람들이 산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나서의 삼손의 모습을 보십시오. 방금 전에는 사기가 등등해서 큰소리를 치던 장수 삼손이 목이 마르다고 투정을 하고 있습니다.

18. 삼손이 심히 목이 말라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께서 종의 손을 통하여 이 큰 구원을 베푸셨사오나 내가 이제 목말라 죽어서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의 손에 떨어지겠나이다

1000명을 죽인 사람이 ‘목말라! 목말라!’ 울고 있는 것이 말이 되는 이야기입니까? 하나님의 성령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시는 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어린 아이같은 사람을 성령이 지배하시니까 인정하기 힘든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당신도 이 믿을 수 없는 사건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것에 소망을 갖으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비슷한 사건이 성경에도 여러 곳 나옵니다. 가까운 예로 엘리야의 이야기를 아실 겁니다. 바알 아세라 선지자들 850명과 싸워 이긴 후에 엘리야는 브엘세바를 지나서 광야가운데 로뎀나무에 머리를 들이 밀고, 나를 죽여 달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처량해 보입니까? 방금 전까지는 뭐든 해낼 것 같은 엘리야가 하나님의 사자인 그가, 키작은 로뎀나무 그늘에 머리를 들이밀고 죽여 달라는 모양이 한심하기도 하고 안타까워 보이기도 합니다.

요나도 이러한 일들을 거쳤습니다.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후에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박넝쿨 그늘에서 쉬었는데, 이 날 벌레가 박넝쿨을 갉아 먹자 요나는 절망을 합니다.

욘 4:7~8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매 시드니라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은 아주 작은 일로 혹은 허탈한 일로 흔들릴 때가 있음을 인정해야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에는 정상적인 생각을 할 수가 없다는 것도 인정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뭐라해도 내가 목마른 순간에는 내가 목마른 것이지 다른 사람들이 목마른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내가 제정신이 아니니 우리가 의지해야 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매뉴얼입니다. 성경책을 의지해야 합니다. 내 마음은 심히 흔들리지만 성경대로 이 위기를 넘어가는 것입니다.

차가 고장나면 그냥 고치나요? 매뉴얼이 있습니다. 기술자들만 보는 책이,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그대로 고치면 차는 복원이 됩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에는 매뉴얼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삶에도 매뉴얼이 있습니다. 무시하고 살기 때문에, 없는 것처럼 살기 때문에, 우리 인생이 위기를 만나면 쓰러지는 것을 당연한 것처럼 여기고 회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삼손이 목이 말라서 죽고 싶다고 투정을 할 때에 우리의 인간적인 모습들이 나옵니다. 어린아이처럼 목말라 죽겠다는 이야기를 해도 물을 달라는 말은 안합니다. 우리도 그렇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은 하는데 구체적인 소원을 아뢰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참 감사한 것은 주님이 우리들의 미로같은 마음을 이미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19. 하나님이 레히에서 한 우묵한 곳을 터뜨리시니 거기서 물이 솟아나오는지라 삼손이 그것을 마시고 정신이 회복되어 소생하니 그러므로 그 샘 이름을 엔학고레라 불렀으며 그 샘이 오늘까지 레히에 있더라

하나님께서 삼손을 위하여 준비해 주신 샘의 이름이 엔학고레라고 합니다. 엔학고레는 ‘부르짖는 자의 샘’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의 삶이 지치고 힘들 때에 엔학고레라는 샘이 여러분들 곁에 솟아나기를 기도합니다.

가까운 목사님으로부터 들은 간증입니다. 한 지역의 시의원이었고 나름대로 잘나가던 무늬만 크리스천이었던 한 분의 이야기입니다. 하루는 음식을 먹는데 잘 넘어가지 않더랍니다. 약국에서 약을 먹어 보았지만 차도가 없자 병원에 가게 되었고 위암 말기란 청천병력같은 소리를 듣게 됩니다. 나름대로 고쳐보려고 하루에 몇시간씩 걷기를 하고 노력을 하였지만 음식을 먹을 수 없게 되어 살이 빠지고 거의 뼈만 남게 되었습니다. 이후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께만 생명을 맡기고 기도를 시작한 어느날,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한 음성을 듣게 됩니다.

엔학고레!

그는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찾아보기 시작했고 그것은 삼손이 목마름에 죽어가다가 발견한 샘의 이름이고 그 물을 먹고 살아 난 샘의 이름이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날 부터 뼈만 남았던 이 사람이 죽음보다 고통스러웠던 뼈의 통증이 사라지면서 이틀간 잠을 푹 자게 되고 이틀간 음식을 마음껏 먹게 되어 6kg이나 살이 찌는 기적을 경험합니다.

너무나 감사하여 그는 이렇게 기도했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 같은 것을 다시 살게 해주셔서 너무도 감사합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아니 내가 감사하단다. 네가 너무도 빨리 깨달아 주어서많은 사람들이 깨닫는 시간이 늦어서 안타까운데 너는 오히려 빨리 제자리를 찾아 주어서 오히려 감사하다’ 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의 삶이 힘들때에 엔학고레의 음성이 들려지시길 기도합니다. 삶이 공허하다고 느껴지는 순간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무엇엔가 중독이라도 되어서 간신히 간신히 살아보겠다는 사람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공허하다는 것은, 허전한 것을 채우기 위해 뭔가를 찾는다는 것은 당신이 지쳐있다는 증거입니다. 다 멀쩡해 보이지만 사실 멍쩡한 사람이 여기 이 자리에 얼마나 있습니까? 열심히 사는 사람들 중에는 멀쩡한 사람들이 없습니다. 하나하나 상처투성이에 환자 직전의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아빠는 아빠대로 무거운 짐을 지고 걷지도 못해서 기어가는 모습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엄마는 엄마대로 허리띠 졸라매고 어떻게든 버텨보겠다고 몸부림치는 모습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자녀들은 자녀들대로 학업에 진로에 사회적응에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우리들은 저마다의 광야 길을 걷고 있습니다.

어떤 가정은 행복하게 보이나 그 가정 또한 상처를 안고 살고, 어떤 가정은 이혼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며 하루를 버티는 가정들이 있습니다. 그래도 신앙으로 이겨보려고 몸부림치는 가정들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당신들에게는 샘이 필요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샘은 소성케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치유시키고 회복시키는 능력입니다.

 

에스겔서 47장입니다.

1.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 내리더라

2.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꺾여 동쪽을 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오른쪽에서 스며 나오더라

3.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쪽으로 나아가며 천 척을 측량한 후에 내게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4.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5. 다시 천 척을 측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가득하여 헤엄칠 만한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6.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이것을 보았느냐 하시고 나를 인도하여 강 가로 돌아가게 하시기로

7. 내가 돌아가니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더라

8.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 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9.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10. 또 이 강 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 그물 치는 곳이 될 것이라 그 고기가 각기 종류를 따라 큰 바다의 고기 같이 심히 많으려니와

11. 그 진펄과 개펄은 되살아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

12.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샘은 생명의 능력이 있습니다. 소성케 되는 능력입니다.

구약에는 샘을 이야기하지만 예수그리스도의 시대, 성령시대에는 그 샘을 주님의 보혈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보혈만이 우리를 만족시킬 수 있습니다. 주님의 보혈만이 우리의 허망한 세월과 허탈한 마음을 채워주실 수 있습니다.

 

이사야 43: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여러분들의 인생이 사막같다면 용기내십시오. 목말라 죽고 싶은 인생이라면 더더욱 힘을 내십시오. 이제 하나님이 일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평생에 주님의 샘을 허락하시는 은혜를 잊지 마십시오.

이 시간에는 주님이 우리마음에 들려주시는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여러분이 지쳐있다고 생각되시면 가슴에 손을 얹어 주십시오. 무언가를 결정해야 하는데 너무 지쳐있습니까. 지금 일어나야 하는데 일어나기가 두렵습니까. 내 인생은 허탈과 허무에 사로 잡혀 있습니까. 주님이 여러분들 마음에 들려주시는 이야기를 들으시기 바랍니다. 허무하고 공허하고 지친 당신에게 하시는 이야기를 들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이 열심히 살아오는 동안 우리 삶에는 지친 발자국들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샘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달의 말씀